탄소감축과 경제성장을 함께한다!?
황정인 활동가(ICE네트워크 사무국)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현재 한국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현 정부의 기후위기대응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현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의 기조는 ‘핵발전을 늘리고’, ‘기후위기의 주범인 탄소를 포집해서 가두겠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질문이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경제성장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였다면 현 정부의 방향이 맞을지도 모른다. 신재생에너지 연구비를 삭감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국가수출산업의 기반으로 삼아 튀르키예와 같은 국가에 홍보하고 확대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탄소를 석탄발전소의 굴뚝에서 포집하여 동해 바다의 깊은 곳 어딘가에 무기한 저장시켜놓는 계획도 가능하다고 백번 양보해보자.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이 경제성장 말고 다른 목표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탄소감축을 시장화, 상품화함으로써 높은 경제성장이라는 효과를 불러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라도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 앞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더 높은 경제성장률인지를 고민해보면 어떨까. 한국은 한때 눈물겨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이 합심하여 노력한 끝에 기적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났다. 현재 29회째를 맞이하는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앞두고 우리의 질문이 여전히 ‘어떻게 한국인의 삶을 더 부유하고 윤택하게 할 것인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이는 한국 사회의 안일하고도 얄팍한 기후위기에 대한 의식 수준과 거의 없다시피 한 책임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밖에 되지 않을지 모른다.
이제는 ‘탄소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근원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리고 그 답을 가급적 삶의 흔적들에서 찾아야 한다. 개인의 일상적 습관들이 모여 하나의 관습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일상을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례로 정부의 노후된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고 핵발전 사업을 국내외적으로 확장했을 때 발생할 잠재적 피해의 고통과 아픔의 크기와 무게를 머리로 계산해보고 동시에 가슴으로 감각해 보는 사회적 공감의 연습이 필요하다. 최근 경쟁력 높은 대중문화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대한민국이 정작 인류의 최대위기를 막기 위한 탄소 감축이라는 의제 앞에서 ‘한국인의 경제적 윤택함 증대’라는 편협한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싸늘한 고립을 자초하게 될지 모르겠다. 경제성장을 향한 위험한 무한질주는 이제는 멈추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탄소감축과 경제성장을 함께한다!?
황정인 활동가(ICE네트워크 사무국)
지난달 헌법재판소는 현재 한국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현 정부의 기후위기대응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현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의 기조는 ‘핵발전을 늘리고’, ‘기후위기의 주범인 탄소를 포집해서 가두겠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질문이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경제성장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였다면 현 정부의 방향이 맞을지도 모른다. 신재생에너지 연구비를 삭감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국가수출산업의 기반으로 삼아 튀르키예와 같은 국가에 홍보하고 확대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탄소를 석탄발전소의 굴뚝에서 포집하여 동해 바다의 깊은 곳 어딘가에 무기한 저장시켜놓는 계획도 가능하다고 백번 양보해보자.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이 경제성장 말고 다른 목표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탄소감축을 시장화, 상품화함으로써 높은 경제성장이라는 효과를 불러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라도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 앞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더 높은 경제성장률인지를 고민해보면 어떨까. 한국은 한때 눈물겨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이 합심하여 노력한 끝에 기적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났다. 현재 29회째를 맞이하는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앞두고 우리의 질문이 여전히 ‘어떻게 한국인의 삶을 더 부유하고 윤택하게 할 것인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이는 한국 사회의 안일하고도 얄팍한 기후위기에 대한 의식 수준과 거의 없다시피 한 책임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밖에 되지 않을지 모른다.
이제는 ‘탄소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근원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그리고 그 답을 가급적 삶의 흔적들에서 찾아야 한다. 개인의 일상적 습관들이 모여 하나의 관습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일상을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례로 정부의 노후된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고 핵발전 사업을 국내외적으로 확장했을 때 발생할 잠재적 피해의 고통과 아픔의 크기와 무게를 머리로 계산해보고 동시에 가슴으로 감각해 보는 사회적 공감의 연습이 필요하다. 최근 경쟁력 높은 대중문화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진 대한민국이 정작 인류의 최대위기를 막기 위한 탄소 감축이라는 의제 앞에서 ‘한국인의 경제적 윤택함 증대’라는 편협한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싸늘한 고립을 자초하게 될지 모르겠다. 경제성장을 향한 위험한 무한질주는 이제는 멈추어야만 한다. 우리에게 두 번째 지구는 없다.